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나마 스캔들 (문단 편집) == 내용 == [[1880년]] 프랑스 제3공화국 정부는 [[콜롬비아]] 정부로부터 [[파나마 운하]] 수주권을 확보하고 공사에 돌입했지만 아직 치료법이 없었던 [[말라리아]]로 인하여 2만 2천명의 건설노동자가 사망하는 등의 악재가 잇따르면서 1890년에는 공사가 실패했음이 자명해졌다. 하지만 이미 막대한 투자를 행한 건설사 측은 정부 모든 부서에 천문학적인 [[뇌물]]을 뿌리면서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기 때문에 공사의 실패가 세간에 드러난 시점은 [[1892년]]쯤이었다. 1892년 [[조르주 클레망소]]를 비롯한 6명의 현역 장관들이 건설책임자였던 페르디낭 드 르셉스로부터 '''막대한 뇌물을 받고 공사의 실패에 대해 함구하는 한편 추가적인 투자액 확보를 위한 [[유령 회사]] 설립을 지원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프랑스 정국은 발칵 뒤집혔다. 연이어 드러난 부패의 규모는 정말로 충격적이었는데 무려 '''510명의 국회의원'''들이 르셉스로부터 뇌물을 제공받고 파나마 운하 건설 시공사의 시궁창스러웠던 재정 상태에 대해 침묵을 했다는 의혹이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경찰서 정모]]~~ [[장 조레스]]가 주도한 조사 위원회에서 이 510명 가운데 뚜렷하게 뇌물을 수수한 정황이 드러난 의원만 무려 104명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건설사 측의 주요 인물들은 중형을 선고받았다. 덧붙여서 1903년 프랑스는 수주권을 4천만 달러에 [[미국]] 측에 팔았고[* 처음에는 미국에 1억 1천만 달러를 요구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물론 [[하하하 이녀석 하하하]].] 미국은 1914년에 [[파나마 운하]]를 완공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